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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허무에서의 쇼펜하우어의 짧은 글귀들을 모아보았다.
-인간이야 말로 모든 것으로 하여금 시시각각 우리의 손 아래서 무로 돌아가 버리게 하고, 그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인생은 현미경으로 보면, 겨우 볼 수 있는 아주 아주 작은 것으로, 이 이상 쪼갤 수 없는 하나의 점이다. 우리는 이것을 공간과 시간이라는 두 개의 도수 높은 렌즈로 확대시켜 억지로 크게 하여 보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란 우리의 두뇌 속에 있는 장치로 사물 및 우리 자신의 철두철미 허무적인 존재에 지속성을 줌으로써 실재성이라는 가상假像을 부여한다.
-인간은 추억의 말라빠진 미이라. 시간이라는 형식, 그 자체는 우리에게 지상의 모든 향락의 허무성을 가르쳐 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육체의 생활이 노상 가까스로 죽음을 방해하고 있는 것, 즉 연기된 사망임은 분명하다. 나아가서 정신 작용 역시 노상 어떻게 해서든 지루함을 얼버무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모든 본질은 채울 수 없는 목마름과도 비슷한 욕망과 노력이다.
하지만 모든 욕망의 근저는 동물이나, 인간이 그 본질부터가 부과되어 있는 부족, 결핍, 그리고 고통인 것이다.
이에 비해 너무나 손쉽게 필요한 것이 얻어지는 까닭에 욕망이 감퇴하여, 욕망의 대상이 없어지면, 이번에는 무서운 공허함과 지루함에 엄습된다. 즉 자신의 본질과 생존 자체가 무릇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된다.
-욕망 없는 인식, 즉 예술 작품의 참된 감상이 있다. 대다수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즐거움에 잠길 수가 없다.
그들의 건의 욕망에 의해 좌우된다. 그 무엇이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흥미 있는 것으로 생각되더라도 의지가 그들을 어떤 모양으로나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 경우 의지와는 매우 먼 연관 밖에 없다거나, 또는 의지와 연결 짓는 가능성이 있을 뿐 이라는거나, 그래도 좋다. 아무튼 의지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이 인식 가운데보다도 훨씬 많은 의지 가운데서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행동과 그것에 대한 반동만이 그들의 유일한 요소이다. 그들의 이런 특성이 소박하게 나타나는 모양은 실상 흔한 작은 일에서도 주워 올릴 수가 있다. 가령 관광지를 찾아 가게 되면 무턱대고 자기의 이름을 적어놓고 오는거니 와, 이것은 명소가 그들에게 작용을 걸어오지 않았으므로 그들 쪽에서 명소와 연관을 지워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괴로움을 추방하려고 끝없이 노력을 해 보았자, 괴로움의 모양을 바꾸는 이상의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고뇌에 대하여
-흐르는 시간은 덧없이 줄달음치는 생존 속에 고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 즉, 무한한 고통과 영원한 즐거움, 변치 않는 인상과 영속되는 즐거움,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일관하는 결심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 녹아서 없어진다.
-이 세상에 진지하게 대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 티끌같은 이 세상에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은 커다란 일이건, 작은 일이건 간에 계속해서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설혹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약속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 상례요, 설령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그 소원 대상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할 따름이다. 즉 우리를 기만하는 것은 희망인 동시에 대상이기도 하다.
-대기의 압력이 우리에게서 제거되면 우리의 신체가 완전히 파열되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생활의 결핍과 고역, 역경과 좌절의 압박에서 해방되면 그는 오만한 마음이 부풀어올라 비록 파멸은 모면한다 해도 걷잡을 수 없이 어리석은 짓을 할 것이다. 아니 아주 미쳐 버릴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때로는 어느 정도의 걱정이나, 고통이나, 고난은 언제나 어느 인간에게 필요하다. 바닥에 짐이 없는 배는 자꾸 흔들려서 도저히 곧게 나아갈 수 없다.
-한사람 한사람 하나 하나의 얼굴, 그 생애는 끝없는 영혼과 같고, 완강하게 살려는 의지는 하나 하나의 덧없는 꿈이요, 의지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끝없는 백지위에 그려 놓은 한 때의 희화이다. 그것이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버리면 그 뒤에 다시 짖궃은 그림이 그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생을 고려해야 할 중대한 다른 일면이 있다. 그것은 격렬하고, 맹목적인 삶의 의지는 이 하나 하나의 장난에 대한 보상으로서 심한 고통과 비통한 죽음-오랫동안 두려워하던 끝에 드디어는 닥쳐오고야 마는-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시체를 보고, 갑자기 엄숙한 기분에 싸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훨씬 단순한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식물은 글자 그대로 만족하고 있고, 인간은 지적 수준이 낮을수록 만족하고 있다. 동물의 생존에는 인간보다 훨씬 더 적은 고통과 즐거움이 따른다. 그것은 동물의 근심 걱정에서 오는 괴로움을 모르고, 희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사고의 힘으로 즐거운 미래를 예상하지 않는 동시에 그 예상에 수반되는 축복의 환영에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의 의식이 직관 되는 것에 국한되어 현재에만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요컨대 동물은 구체화된 현재상이므로, 현재 속에서 직관적으로 나타나는 사물에 대해서만, 짧게 또는 재빨리 두려움과 소망을 느끼지만, 인간의 의식은 인생 전체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그 이상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된다.
그때 그때의 시간을 아무 걱정 없이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다.
비판
비판의 의미는 한편으로는 인식 능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반성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억압적 상황에 대한 반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들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주어진 현실 자체를 단순히 설명하고 해석하는 데 만족하는 이론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심도 깊은 반성을 촉구하여 진정으로 인간답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한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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