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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너에게
끄적거림/나의 너에게

물고기

by paust91 202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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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나른하다. 영화를 보다 늦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 아무런 감흥 없이
커피를 내려 마신다. 커피 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느낄려고 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어떤 향이 있다. 이게 커피인가 싶다. 한 모금 마시면 그저 정신이 조금 돌아 온다.
세상이 궁금한게 아닌데, 오늘 일간신문을 펼쳐 본다. 읽을거리,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 동안, 커피와 함께 마실 치즈케이크가 전자레인지에서 나올 때까지의 시간 동안,
그 공백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글씨 크기가 큰 대제목만 읽고 훌훌 넘긴다.
신문을 다 보았을 때 곱씹을 것이 없다. 세상엔 곱씹을게 그닥 없는데 내 앞에 닥친 현실에서의 문제엔
참 곱씹을게 많다. 세상과 나는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양치를 한다. 며칠 전 치과를 다녀와 더 깨끗하게 닦는다. 충치가 있다고 했다.
꼭 인간은 일이 닥쳐와야 제대로 한다. 어금니 안 쪽까지 입을 크게 벌려 구석구석 닦는다.
혀클리너로 새벽의 백태를 박박 닦아 낸다. 
개운하지 않다. 치약을 바꿔야 하나 생각한다.
그리고 방에 들어 와 어제 읽다만 책을 피고 마저 읽는다.

매일 반복 되는 일상이 지겨워 질 때가 있다.
아무런 감흥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저 멍하니 숨을 쉬고 있는 동물같다.
야생의 동물은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오감은 무척 민감하게 발달되어 있다.
나는 안전한 가옥 안에, 그것도 내 방 안에 있다. 모든 것을 즐기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마치 수족관 속 물고기 같다.

처음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 규칙적으로 흘러 가는 일상
아침엔 한가하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없다. 점심 쯤 한 남자가 내 수족관 앞에 2시간 째 앉아있다.
저녁 쯤엔 유치원 단체관람이 있다고 했던가? 그건 내일이던가?
점심밥이 내려 온다. 천천히 떨어지는 먹이를 바라본다. 건너편 수족관은 많은 물고기들로 인해
먹이전쟁을 해야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내 수족관을 관리하는 사람은 인심이 후하다.
언제든 양껏 먹이를 먹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밖에 없다. 빨라질 이유가 없다.
처음으로 갑갑함을 느꼈다. 나가고 싶다. 
바깥 세상엔 물로 가득 찬 세상이 아니다. 중력때문에 걸어다닐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것이다.
나는 네발 다린 동물을 상상한다. 그리고 네발 달린 짐승이 되길 바란다.
상상해보니 너무 흥미롭다. 하루 종일 발이 달렸다면 어떨지 상상한다.
어느새 상상은 기대가 되었고 희망이 되었다.
누군가가 와서  “어이쿠, 왠 고양이를 욕조 안에 가둬놨어?” 라고 말해주며 나를 꺼내 주길 바라는 상상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기대를 품으며 아침을 마감하고 오늘의 점심을 먹고 어제의 기억을 더듬는다.
네발 달린 짐승일지도 모른다는 기억. 나의 최초의 기억이 뭐였지?
나는 내 자신의 문제에 침잠한다.

물고기는 자신의 꼬리를 물기 위해 빙빙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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